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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칼럼] 지나간 기억은 아파도 아름답다
어제는 강변을 하염없이 걸었다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어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이 받았거든.
내가 수년 동안 온갖 공을 들인, 내 삶이 곳곳에 녹아 있는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철거 된다고 해서 말이야. 그러면 당연히 그 속에 있는 공부방도 없어질 것 아닌가? 아닌게 아니라 어제는 이름 모를 화재가 나서 교실도 좀 탓다네.
빨리 나가라고 경고를 주는 것이겠지. 참 무작시런 놈들이네.
산 사람을 그냥 내 몰다니 말일세. 막말로 꼭지가 돌더구만. 그래서 걸었다네.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피눈물이 내 영혼에 스미는 것 같아…
화가 나서 걷고 또 걸어도 강물은 자꾸 따라만 오고…
그래서 하릴없이 돌덩이에 주저앉아 버렸다네.
돌 틈에 한 생명이 살더구먼. 조그만 도마뱀이 말야. 그리고 옹색하게 코딱지만
한 들꽃도 피어있고 말야. 나… 아이구 했어! ‘미물같은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구나야’ 했어. ‘어디 갈 데가 없어 이 옹색한 돌덩이 밑에 숨었누, 이 멍청이들아.’ ‘도망가려면 좀 멀찌감치나 가지. 그래 이러다가 무작스런 놈이라도 오면 어떡할레?’ 마치 도마뱀이 불쌍한 아이들처럼 보였나 보네.
생각하면 그곳 사람들이, 그리고 아이들이 너무 안쓰러워.
갈 데 없이 헤매다가 강변 손바닥만한 곳에 인생을 맡기고 의지했던 슬픈 과부의 인생, 그 자식들의 인생의 행로가 눈에 밟히는 것 같네. 그들이 이제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서 목구멍에 풀칠을 하고, 그리고 그 인생에 쌓여만 가는 슬픔을 다 어찌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 철부지처럼 인생을 희롱했던 내 마음에 피눈물이 흐르네.
그런데도 나는 내 손때 뭏은 공부방이 없어진다는 것에만 분노하고 있었으니… 나라는 놈은 얼마나 모질고 형편없는 이기주의자인가?
우리 인생이라는 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봐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손에 쥐어 주어도 그것이 뭔지도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반 소경 인생 아닌가? 그러면서도 뭔가 좀 안되는 일이 있으면 그것이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힘들고 서운하고 그러네. 아직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천둥 벌거숭이라서 그런가봐.
내가 그 꼴이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자주 주저앉아 넋두리도 하고 살려네.
나야 자네들 알다시피 뻥쟁이에 어설픈 날라리 아닌가?
그런데 이제는 지치고 힘도 빠지는 것 같네.
그래서 오랜 친구들이 무척이나 그리워 몇자 적어 보내네.
지나간 기억은 아파도 아름답다./정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