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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역사탐방] 푸난 왕국
캄보디아 지역의 역사상 최초의 국가는 푸난 왕국이다. 국가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대략 1~2세기경에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푸난 왕국은 메콩강 삼각주 지역에 위치했으며 중심부가 있었던 곳은 현 프놈펜보다 조금 아래쪽이었다. 푸난 왕국은 캄보디아어로는 산을 의미하는 ‘프놈’ 혹은 ‘노꼬 프놈’ (노꼬는 왕국을 의미한다.) 이라고 하며, 중국의 기록에는 ‘부남’ 이라고 쓰여있다.
푸난 왕국에 대한 정보는 주로 중국의 기록, 비문, 유물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푸난 왕국은 중국, 참파(베트남), 인도 그리고 로마 등 유럽대륙까지도 무역을 하였는데 주요 항구였던 옥 에오 지역은 남중국해와 태국만과 가까워 중국과 인도사이를 통과하는 화물을 위한 창고로 적합하였으며 운하를 만들어 내륙의 배수처리시설을 하는 동시에 선박도 왕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인도와 중국간의 해상무역의 중심에 위치하여 강력해진 푸난 왕국은 가장 번성하던 시기에는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는 많은 소규모 국가들을 통치했다. 인도와 중국의 해상무역의 요충지로 번성하기까지 푸난 왕국은 중국과 인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 문화의 유입의 증거는 푸난 왕국의 건국설화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 건국 신화는 기원후 3세기 중반에 중국의 사신인 캉타이와 주잉이 푸난 왕국을 방문한 뒤 중국 사서에 기록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카운디냐라고하는 인도의 한 브라만이 배를 타고 어느 왕국의 해안에 도착했는데 ‘나가’신의 딸이자 그 왕국의 공주였던 소마는 그 배를 빼앗기 위해 군사들을 준비했지만 카운디냐가 그의 신성한 활로 공주의 배를 부숴뜨리고 공주는 그가 두려워서 남편으로 맞이한다. 그리하여 카운디냐는 왕이되어 나라를 다스린다는 이야기이다. 이 설화는 동남아시아의 토착세력과 인도로부터 온 세력의 결합 즉, 미개사회와 문명사회의 결합을 상징한다. 그러나 일방적인 인도 문명의 점령이 아닌 토착 지배 세력과의 융합으로 독특한 형태의 문화를 형성한 것이 푸난 왕국의 특징이다.
또한 푸난 왕국이 무역 활동의 요충지로 번성하고 많은 인도의 상인들, 모험가들이 왕래하고 정착하면서 토착부족에게 통치기술을 전수하였는데 바로 힌두교를 통한 토착부족장의 권력 강화이다. 부족장은 힌두교의 시바신과 동일시되며 경배되었는데 이는 후에 앙코르 시대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힌두교 문화가 전해진 이래 불교문화도 자연스레 뒤따라오게 되었다. 중국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푸난 왕국에 감옥은 따로 있지 않았으며 형법으로는 범죄자를 뜨거운 물이나 쇠에 닿게 하거나 맹수들이 있는 곳에 범죄자를 같이 가두었다. 이렇게 해도 해를 입지 않는 자는 결백한 것으로 믿었고, 이 심판의 결과는 신의 뜻으로 간주되었는데 이와 같이 시련을 이용한 재판제도는 고대 인도 왕국과 공통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
또한 푸난 왕국은 당시의 다른 동남아시아 나라들처럼 중국에 코끼리, 코뿔소 등의 조공을 바쳤다고 한다. 푸난 왕국은 중국의 관점에서 인도의 문명을 공급하는 주요 창구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해상무역으로 번성했던 푸난 왕국은 4세기경 중국이 동남아시아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중계무역지로서 위치가 흔들리게된다. 6세기 중엽 크메르 부족이 세운 왕국으로 푸난 왕국의 속국이었던 첸라는 내란으로 인해 약해진 푸난 왕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킨다./ 박근태(왕립프놈펜대학교 크메르어문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