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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캄보디아 시위를 떠올리는 영화
(영화 캡틴 필립스의 한 장면)
영화 <캡틴 필립스>는 2009년 케냐로 항해하던 공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미국 화물선 앨라배마 호의 선장 리차드 필립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무장한 소말리아 군벌의 부하 4명이 화물선에 침투하자, 필립스 선장은 선원들을 대피시킨 채 홀로 대치한다. 우여곡절 끝에 해적들은 선장을 납치해 구명보트를 타고 달아나게 되고, 미 해군의 필립스 구출작전이 시작된다.
해적들은 필립스 선장을 소말리아에 있는 보스에게 데려가 몸값을 받고 돌려보내려하지만,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미국 해군 병력에 포위되고 만다. 뼈와 피부밖에 남지 않은 깡마른 소말리아인과 적당한 근육에 건장한 미국인 선장, 망망대해 가랑잎처럼 흔들리는 구명보트 속 대화가 인상적이다.
“작년에 그리스 배를 납치했는데 6백만 달러를 받아 냈어.”
“근데 아직도 이 짓 해?”…
“나는 보스가 있고(상납해야 하고) 그의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야.”
“우리 모두 보스가 있지.”
소말리아는 세계 최빈국이다. 일인당 GNP 600달러로 미국의 일 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미국의 패권주의적 개입으로 전 국토는 내전에 휘말리게 되었고, 강대국 원양어선의 싹쓸이 조업으로 어장마저 빼앗겨 어업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생계형 해적이 출몰하게 된 까닭이다. 해적들은 군벌 원로와 굶주린 가족을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필립스 선장도 해운회사와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미 해군 또한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비좁은 구명보트 안의 선장만 제외한 해적 세 명을 저격 사살해야하는 정교한 작전을 위해 최정예를 동원한다. 각각의 보스들은 저 너머 안전지대에 머무를 뿐이지만, 저마다의 임무(혹은 이익)를 위한 삶의 현장은 치열하기 이를 데 없다.
작금의 캄보디아 시위사태와 이 영화의 일면이 겹쳐온다. 근로자와 시민들은 최저생계 보장과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시위에 열심이다. 경영진은 회사운영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경찰과 군인 또한 명령체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렇듯 보통사람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소속의 위아래만 보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경제가 발전하는 단계에서 계층 간 갈등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어느 때보다 인권문제와 국가경제, 글로벌기업 및 세계동향 전반에 걸친 혜안과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역할이 중요해지지 않았나 싶다.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였던 롱가지네는 일기에 이렇게 털어 놓았다.
“한 사람의 바보는 한 바보.
두 사람의 바보는 두 바보.
만 사람의 바보는 ‘역사적인 힘’이다.”
우리네 같은 사람 하나야 미욱하기 짝이 없는 존재지만, 거리로 나온 ‘군중’이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격류가 되어 진보를 이룬 적 보다 피비린내 나는 비극으로 기록된 사례가 얼마나 많았던가. 노 ․ 사 ․ 정 책임자들의 섣부른 결정이 성마르기 쉬운 군중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면 어쩌나 우려되는 시기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