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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
인터넷에서 누군가 올린 만화를 보았다. 한 아낙이 커다란 짐 꾸러미 하나를 머리에 이고 하나는 등에 지고, 어린자식 둘과 함께 힘겹게 걸어간다. 지나가던 행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짐 거들어 드릴까요?”, 하며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아낙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아이 둘을 맡기고 짐만 챙겨 달아난다. 자식하나 사람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데, 세상살이는 점점 팍팍해져 ‘자식이 가장 버거운 짐’으로 다가오는 세태를 풍자한 만화다.
사회문제가 가족구성에 영향을 미친 가장 극적인 예로,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의 경우를 꼽는다. 오랜 기간 영국의 통치를 받아오던 아일랜드는 대부분의 농작물을 영국에 강탈당하는데, 감자만은 ’악마의 열매’라는 당시 통념 때문에 제외된다. 주린 민중은 너도나도 감자를 심게 되고, 고생산성의 녹색혁명 영향으로 불과 60 년 만에 인구가 배로 늘어난다. 단일경작의 위험은 전염병에 있다. 1840년대 감자마름병이 전국의 감자밭을 휩쓸자, 감자가 주식이던 나라는 파국을 맞는다. 굶주리다못해 개, 고양이를 잡아먹는 상황에서도 영국의 무자비한 수탈은 계속되어, 100만 명이상이 아사하고 200만 넘게 고국을 떠나 인구가 절반으로 감소한다. 감자경제 붕괴 후 아일랜드인의 생활양식도 큰 변화를 보인다. 결혼적령기 남자 중 독신이 80퍼센트에 달했으며 되도록 결혼을 늦추고 결혼해도 최소한의 자식만 두었다. 이런 경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2012년 1.23%까지 떨어졌다. ‘출산장려금’이니 ‘다자녀 대학 입학전형’이니, 다양한 출산장려 정책을 펴고 있으나 초저 출산율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성의 높은 사회진출이나 개인 중심의 가치관 변화 등, 출산기피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아일랜드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암담한 사회경제구조가 가장 큰 원인일 터이다. 몸이 부서져라 일해 봐야 부채는 늘어가고, 주거 ․ 고용 ․ 노후 불안으로 삶을 위협당하는 분위기에서 후대를 기약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미물도 안전지대임을 확인한 후에야 둥지를 틀지 않던가.
“과거에는 유리잔이 가득차면 흘러넘쳐 가난한 자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리잔이 가득차면 마술처럼 유리잔이 더 커져버린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에게는 결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상생(相生)을 저버리는 싹쓸이구조를 탄식한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씀이다. 소수독식 시스템의 고착화야말로 피임사회 고착화로 이어질 터이다. ‘상생’을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종북으로 몰리는 한국에서라면 이분의 사상도 의심받지 않을까싶다. 아직까지 확신이 가는 이데올로기를 찾지 못했지만, 어떤 통치이념이라도 ‘자식이 짐’인 사회를 만든다면 용서받지 못하리라는 점은 확신한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기는 것은 가문의 몰락을 의미하듯, 미래말살 정책과 다를 바 없으니.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