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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순칼럼] 개념을 찾아서
일제시대 이조백자가 로망이던 일본 아낙이 한국인으로부터 모란꽃그림이 그려진 요강을 선물 받았는데, 뚜껑까지 딸린 이 앙증맞은 단지의 용도를 몰라 밥통으로 썼다는 꽁트를 읽은 적이 있다. 6.25전쟁 이후 벽촌에서 서울로 식모살이 온 처자가 말간 물이 새록새록 채워지는 양변기를 샘으로 오인하여 변기 물을 퍼다 밥물로 썼다는 얘기도 있다. 바닥 닦던 걸레로 식탁을 쓱쓱 훔치는 캄보디아 여인과 맞닥뜨리게 되면 그 옛 얘기들이 떠오른다. 지혜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를 거리로 따지면 삼천리나 된다고 하듯이(有智無智 校三千里), 사물의 이치를 모르고 저지르는 행동은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개나 소도 한다는 운전도 못하는 처지라 차를 얻어 타고 다니다보면, 캄보디아 사람들 개념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교차로에 신호등이 작동하는데도 자석에 쇠붙이들 달라붙듯 차량이 엉켜있기 일쑤다. 자동차, 오토바이, 툭툭이가 차선이나 신호를 무시하고 끼어들기 때문이다. 대형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해 오거나 골목에서 오토바이가 경주하듯 튕겨 나오는 아찔한 순간에는 운전 배우지 않기를 잘했다 싶다. (운전석의 여사님께서 크메르말로 덥 쁘람바이!(열여덟!)라고 외쳤던 것도 같고) 한 때 외국인들 사이에 “인생이 따분하면 서울에서 운전대를 잡아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제 “서울”보다 “프놈펜”이다!
전염병의 실체가 규명되기 전까지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류는 숱한 희생을 치렀다. 절대주의시대 유럽 도시에는 공중변소가 없었다. 변소가 없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귀부인들이 가로수를 방패삼아 용변을 보는 것을 빗대, 궁전의 가로수 길을 “신음의 가로수 길”이라 칭했을 정도였다니. 문헌에 따르면, 마구 내다버려진 똥오줌으로 거리는 시궁창 같았고, 드레스자락에 오물이 묻을세라 하이힐이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수인성 전염병이 자주 돌았던 탓에 당시 평균수명은 35세에 불과했다. 18세기 들어 공중화장실을 설치하고 하수시설을 갖추면서 배설물을 무단으로 버리는 행위를 금지했다. 어느 시인은 “똥냄새로부터 멀어지면서 우리는 고향을 잃었다.”고 아쉬워했지만, 어쨌거나 분뇨를 따로 처리하게 되면서 인류 수명이 대폭 늘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캄보디아인은 위생개념이 희박하다. 아직까지 가축과 생활을 공유하는 부분이 많고, (화장실이 부족하지만 멀쩡한 화장실을 두고도) 아무데서나 배변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수질오염을 피할 수 없어 피부병, 눈병은 물론,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의 사망률을 능가하는 “설사병”이 기승을 부린다. 평균수명이 다른 나라에 비해 20년 넘게 짧은 이유다. 부실한 교육-열악한 위생-허약한 체질-미숙련 노동-낮은 임금-의료혜택 불가, 빈국 전형의 사이클이 빚어낸 딱한 현실이다. 가난을 이겨낸 역사가 말해주듯이 교육혁신을 우선하지 않고는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 터이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