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칼럼] 도박, 놀이와 범죄의 경계

기사입력 : 2013년 11월 06일

도박

간식거리가 부족했던 유년기에는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들려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빈 병이나 찌그러진 양은 그릇 같은 것을 주면 엿과 바꿔주기도 했지만, 운수대통한 날에는 공짜 엿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엿치기를 좋아하는 동네 아저씨들이 엿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날이다. 엿치기란 가락엿을 두 동강 내 그 단면에 난 구멍이 큰 사람이 이기는 게임으로 보통 지는 사람이 엿 값을 치른다. 처음에는 엿 맛 품평도 하고 농도 쳐가며 슬슬 즐기지만, 승률이 한 쪽으로 쏠리기 시작하면 지는 쪽이 열을 받아 게임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당연히 절단 난 엿이 수북이 쌓일 수밖에. 눈치 빠른 엿장수는 엿 값을 떼이지 않을 정도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못한 척 내기를 말렸다. 어느 도박판이나 승자의 인심을 후하기 마련이라 옆에서 구경만 하고도 엿을 제법 얻어, “엿 먹어”, “너도 엿 먹어”, 동무들과 신나게 나눠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님이 똥이란 똥을 다 먹었네!” 멀쩡한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대화다. 전 국민이 즐기는 소위, “자본주의 생존경쟁을 위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고스톱 판에서 나오는 소리다. 한 지인은 명절에 시부모님을 고스톱 판으로 유혹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차례고 성묘고 무사통과에 끼니는 배달음식으로 해결하며 고스톱 삼매경의 명절 연휴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찰스 램이 “인간은 도박하는 동물이다”고 했듯이 캄보디아 사정도 마찬가지다. 어딜 가나 카드 판이 눈에 띄고 시장에 나가보면 상인끼리 노름하느라 손님은 본체만체, 본업을 작파하는 축도 더러 있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다.

인터넷 도박, 스포츠 도박, 카지노 도박 등, 각종 갬블링 관련사건이 잇따르고 있어 법이나 의식 개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도박은 인생의 모든 권태로부터 즉시 벗어나게 해준다는 말마따나 무료함을 달래는 것으로 그치면 좋으련만, 절망적인 상황까지 치닫기도 하는 것이다. 캄보디아를 비롯해 동남아 기층에서는 아직도 노름빚으로 마누라를 팔기까지 하니.(역시 여자에게 결혼은 가장 큰 도박이다.) 도박은 어떤 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비생산적인 활동이지만 끝없는 돈의 순환을 만들어 낸다. 봉, 선수, 타짜, 업주 사이에 돈의 주인만 바뀌는 것이다. 손실을 감수할 수 있다면 실제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나, 판돈에 얽힌 범죄에서 자살에 이르기까지 폐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유사 이래 도박을 뿌리째 근절시키는데 성공한 사례가 없어, 사회 문제가 되지 않는 한 금지하지 않고 통제하는 정책이 국제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우리정부 또한 라스베가스나 마카오의 85% 승률보다 훨씬 낮은 50% 승률의 로또 복권 노름으로 11조원의 수입금을 자발적인 조세로 챙기고 있다.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 도박, 마약, 매춘 등과 같이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으면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범죄)는 법제는 물론 개인의 통제 수위가 늘 관건인 셈이다.

/ 나순 (건축사, http://blog.naver.com/naarch)